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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cle Play-기적극(중세 유럽에서 유행한 종교극. 대부분 구약 성서의 내용을 극화한 것들로, 그리스도와 사도, 성자들이 행한 기적이나 사적을 주제로 하였다. -작가 주)


존이 모는 차는 고속도로에서 내려와 상점가로 접어들더니 사람들이 북적이는 중심가로 들어섰다. 그 동안 레스터는 창 밖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정신없이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넋을 놓고 있었다. 얼핏 보면 수족관의 물고기들처럼 보일 정도로 아름답고 화려했다. 그가 상상했던 미국의 모습이었다. 물론 슬럼가나 인종차별 등의 사회적 문제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걸 감수하더라도 살 수 있는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장점과 단점을 겪어보기도 전에 사기를 당해 생판 모르는 사람의 도움을 받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자 슬퍼지기도 했다. 그 때 존이 말했다.

"왜, 너도 저렇게 살고 싶어?" "'저렇게'라는 게 무슨 의미야?" "저렇게 돈을 뿌리면서 사치스럽게 살고 싶냐고." "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돈은 많을수록 좋다고 하잖아."

레스터는 자신이 돈만을 밝히는 속물로 보일까 싶어서 얼른 덧붙였다.

"나도 그렇다는 건 아냐. 대부분은 남들한테 보여주려고 돈을 긁어모아서 뿌리잖아. 나는 그저 여유가 필요해. 남들한테 간섭 안 받고 조용히 살고 싶다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그러면 더 좋지." "안 된단 법은 없어. 꼭 그렇단 법도 없지만." "어쩐지 거짓 희망을 안겨주는 말 같은데."

존은 킬킬 웃으며 말했다.

"달리 무슨 수가 있어? 그게 가능할 거라고 믿으면서 사는 거지. 안 그러면 재미없잖아, 인생이. 무슨 낙으로 살겠냐고." "그래도 힘든 건 힘드니까 그렇지." "아이, 썅. 그럼 내일도 X빠지게 괴롭기를 기대하면서 사냐? 무슨 노예야?" "아니."

존이 욕설을 섞으며 언성을 높이자 레스터는 얼른 꼬리를 내렸다. 존의 막연한 도움을 못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저 사람의 성질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자연적인 신호를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존은 곧바로 화를 가라앉히고 말했다.

"그래, 인생이라는 게 더럽긴 더러워. 아무리 착해도 험한 꼴은 보게 되어 있으니까. 그러니까 네가 투덜대는 것도 이해는 간다. 그렇다고 좌절하면 거기서 끝이야. 기회가 와도 못 잡는다고. 그래서 성경인가 뭐시긴가에서 그러잖아. 뭐였더라. '깨트릴 지어다'?" "'깨어 있으라' 얘기야?" "그래, 그거. 그러니까 긍정적으로 사는 수밖에 없어. 싫든 좋든." "…그렇겠네."

존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지? 그런 거야. 것보다, 미국에는 왜 온 거야? 보아하니..."

존은 레스터의 행색을 재빠르게 훑어보고는 단박에 결론을 내렸다.

"딱 봐도 유학을 온 것 같진 않구만. 범생이들이 입는 옷차림이 아니야. 그렇다고 유학을 핑계로 놀러온 놈들처럼 까지지도 않았고."

상당히 기묘한 판단법이긴 했지만 맞는 말이었다. 레스터는 그런 이유 때문에 미국에 온 게 아니었다. 존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씁, 그 이상은 모르겠군. 그러니까 말해봐. 미국에는 왜 왔어?"

마치 입국 심사대에 서서, 마음에 드는 대답을 하지 않으면 돌려보내겠다는 말을 들은 느낌이었다. 실제로 여기서 존과 헤어지면 곧장 대사관으로 가서 처분을 기다려야 했다. 그것과 별개로 한 문화권의 민족이 이방인을 배척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지만, 미국인과 한국인이라는 국적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레스터의 상상이겠지만, 그의 귀에는 '너는 무엇을 찾으러 왔어?'처럼 들렸다. 레스터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또 다른 세상을 보고 싶어. 이런 세상도 괜찮구나, 하고 느껴보는 거지. 네 말대로 여러가지 험한 꼴을 당하겠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재밌을 거라고 생각해. 아마도." "예전보다? 네가 어디 출신이랬지? 한국? 거긴 어떤데?" "…뭐, 그래."

레스터는 확답을 피했다. 조국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가 있었지만, 그걸 다른 사람, 특히 외국인에게 자랑스레 떠벌이고 싶진 않았다. 한국에서는 어느 쪽을 편들든 그 의견의 반대파에게 씹히기 마련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을 떠나왔으니 한국에 대해서는 발언의 자유가 보장되는데도, 외국인에게 섣불리 떠들어서 나라 망신을 시키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정작 그 이유는 알지 못했다. 아이 엄마가 자식에게 화를 내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좋게 얘기하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돌아갈 곳을 마련해 놓기 위해 반감을 사지 않으려는 행동일지도. 존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뭐, 말하기 싫으면 그만둬. 어짜피 사람마다 얘기가 달라서 어느 쪽을 믿어야 할 지도 모르겠거든. 나도 업무상 한국인들을 많이 만나봤는데 열에 일곱은 자기 나라를 까더라고." "그래? 무엇 때문에?" "정치? 경제? 사회? 어느 쪽을 듣고 싶어?" "아니, 그게 아니라…무슨 일을 하길래 한국인들을 많이 만나냐는 얘기야." "말 안 했던가? 해결사라고."

본인의 입으로 그런 말을 듣자 레스터의 마음 속에는 다시금 의심의 회오리가 일어났다. 어쩌면 해결사고 뭐고 그냥 아무거나 주워들은 망상병자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레스터는 참기로 했다. 아쉬운 쪽은 나니까. 그리고 존이 말한 정보원도 만나보고 싶었다. 대체 어떤 정보원이기에 몸소 만나러 가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럼 그 정보원은?" "내 정신 좀 봐. 다 왔어. 여기야."

존은 차를 세우고는 거대한 가게 앞에서 내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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